워낭소리
감독 이충렬 (2008 / 한국)
출연 최원균, 이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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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ː[명사]마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 또는 마소의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




 

경상북도 봉화군, 
그 곳에 그들이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소.
그들의 미묘한 삼각관계
 

귀가 좋지 않은 할아버지는 몸이 아파 누워있을 때 조차도
소의 딸랑~하는 워낭소리만 들어도 눈을 뻔쩍 뜨시고,
할머니는 "저 놈의 소땜에 내가 못산다" 라는 말을 달고 사신다.


불혹의 나이를 넘긴 소는 한걸음 떼기조차 힘든 몸으로
오늘도 할아버지의 길동무 역할을 한다.
할아버지가 깜빡 잠이 드시더라도 혼자 묵묵히 집까지 걸어간다.
(자기 알아서 집에 찾아가는 개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도 소는 처음 들어본다)





늘 그렇듯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지루하다. 재미없다.' 이다.
맞다. 지루하고 재미없다.
나도 원래 다큐멘터리는 보지 않는다.
티비에서 낮은 성우의 목소리만 들려도 바로 채널을 훽 돌려버린다.



근데, 그런 다큐멘터리가 지금까지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의 영화계 현실에서 다큐멘터리 독립영화가
일반 멀티플렉스 극장에 걸렸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그 개봉극장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관객수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
한마디로 대박인 것이다.


얼마전에 '미안하다 독도야'라는 독도주연의 영화가 개봉했었다.
개봉전에 여기저기서 많이 그 이름을 들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극장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영화 상영전의 예고편에 그리고 독도 모양의 모형에..
 그래서 '다른 곳은 몰라도 이 곳에서는 상영하겠구나' 싶었으나, 찾아 볼 수 없었다.
독도 모양의 홍보용 모형은 이미 한 쪽 구석으로 방치되어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일반 상업영화가 아닌이상 저예산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영화는 극장에서 소외받기 마련이다.
전용극장에서나 볼 수 있을까..


그런의미에서 워낭소리는 한국 영화사에 큰 의미로 남을 만하다고 본다.
영화 자체가 잘 찍혔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만큼 "살아남았다"는 것이 대단하다.
이 정도의 호응을 얻었다면, 그 영화 자체에도 당연히 주목할 만 하겠지만.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아는 스타, 정말 억 소리 나는 제작비, 대대적 홍보,
그 어느것도 없었다.
하지만, 소문에 소문을 거듭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분명, 그 영화에는 다른 것에는 없는 "특별함", 그것이 있을 것이다.





《워낭소리》에는 위트가 있다. 감동도 있다.
위트는 소에게 할아버지를 뺏긴 할머니의 말뿐인 투정속에서.
감동은 무뚝뚝한 할아버지의 모든 것인 소에게서.
또, 그들의 기막히고도 오묘한 삼각관계 속에서.


처음엔 영화를 보면서 노부부의 자식들은 뭘하며 살까.
자식이 없나? 했었다.
그런데, 9남매란다. 깜짝놀랬다.
 
 
할아버지에겐 9남매를 키운 소가,
자식이자 친구이자 연인같은 존재가 아니었을런지..생각해 본다.






처음엔 짜증났다. 아니, 끝까지 짜증났다.

영화의 내용이 내용인 만큼 관객들의 연령대가 높았다.
3~50대의 분들이 많았다. 중년부부들도 참 많이 보였다.
그 나이에 서로 손잡고 영화 보러 오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았으나,
그 매너는 완전 꽝이었다.

신발벗고 앞좌석에 발 올리고 있는 아저씨,
옆 사람과 어쩌고 저쩌고 수다떨기 바쁜 아줌마,
영화보다말고 큰소리로 전화받는사람까지 !!


진짜, 영화에 집중을 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제발, 공공장소에서는 매너 좀 지키라구요 !!!





그래도, 영화 《워낭소리》만큼은 아주 멋졌다.
최고의 영상은 아니었을지라도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대는 최고였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 《워낭소리》가 대한민국 독립영화계의 큰 획을 긋는 중이다.
과연 그 끝이 어떨지는 몰라도, 대단한 기록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 결과가 모두를 훈훈하게 할 만한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관련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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